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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20/12/16(수)
사랑방 이야기 (2) - 함흥차사의 유래  

 

구 본 혁(具本赫)

 

사랑방 이야기 (2)

 

함흥차사의 유래

 

함흥차사란 말은 심부름을 부탁 받고 간 사람이 소식도 없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때 쓰이는 말로, 조선 태조 왕 이성계에 관하여는 많은 설화가 있지만, 여기서는 구전설화 하나를 소개하여 연결할까 한다.

 

태조가 청년 시절에 어느 화사한 봄날 일상처럼 사냥을 나갔다가 짐승들을 쫓다보니, 탈진하고 목이 말라 어느 산 마을로 내려가 물을 마시려고 마을 우물로 다가가니, 마침 앳된 처녀 하나가 물을 긷고 있어, 그 처녀에게 물 한 바가지를 떠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그 처녀는 아무 말 없이 수줍은 듯 슬쩍 바라보더니만, 바가지에 물을 떠서 그냥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우물가에 버들잎을 훑어 물 위에 띄워 주는 것이었다. 그 물 바가지를 받아든 이성계는 순간 그것이 못마땅하기는 하였으나, 목이 마른 차에 그 버들잎들을 누누이 입으로 불어 내어가며 마신 후, 이는 무슨 의도가 있어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싶어 처녀에게 바가지를 건네주면서 이유를 묻자, 처녀가 말하기를 장부의 안색이 몹시도 피곤해 보이고 갈증이 심하신 듯싶어, 찬물도 성급히 마시면 탈이 난다고 들었기에 숨을 고르어 가시며 마시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그 말을 듣고나서 깨달은 바가 있어 참으로 지혜로운 처녀라고 여기고는 돌아오며 마음속으로 그 처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한씨 부인과 결혼하여 여러 자녀들까지 두었지만 그래도 결국 그때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 여인을 잊지 못해 수소문하여 자신의 나이보다 25세나 어린 20대의 여인을 찾아내어 후실로 맞이하였으니, 그는 곧 지난날의 은혜를 잊지 못하였음도 한편으론 마음에서 작용하였을 것이리라. 그 여인은 곧, 강씨 부인으로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현비(顯妃)로 책봉된 신덕왕후로서, 태조 5년에 죽었으며, 그의 소생이 무안대군 방번(芳蕃)과 의안대군 방석(芳碩)이었다.

 

태조가 평소 계비인 강씨를 사랑한 데다가, 그의 소생인 둘째 방석이 어린 나이지만 영특하여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에, 태조의 의중을 알아차린 정도전, 남은 등이 태조에게 방석을 왕세자로 삼을 것을 주청하여 태조 1년에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기라성 같은 정실 한씨 소생 방원의 일당에게 방번, 방석 두 동복 형제가 무참히 살해당하자, 이에 격분한 태조는 1402년(태종 2년)에 고향인 동북면(함경도 함흥지역)으로 낙향하였다. 태종 이방원이 여러 차례 차사(문안사신)를 보내, 도성으로 다시 돌아오시기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보내진 차사들마다 한결같이 죽어 돌아오지 못하자, 그때부터는 누구도 그 곳에 차사로 떠나기를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자, 평소부터 태조와 친분이 두터웠던 박순(朴淳)이란 분이 스스로 가기를 청하여 떠나는데, 그는 다른 사신들과는 달리 갓 낳은 새끼 딸린 소를 한 마리 구해다가 타고 가서 함흥에 도착하여 태조가 머물고 있는 행재소 가까이에 송아지를 떼어 나무에 묶어 놓고, 새끼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울부짖는 어미 소만을 억지로 끌고 가 태조를 배알하게 되었다. 그러자 새끼 떨어진 어미 소는 밤새도록 그치지 않고 울고 있으니, 태조가 듣다못해 박순에게 물었다. 저 소는 어찌하여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저리 울어대는가? 하시자, 박순이 말하기를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를 행로에 방해가 될까 싶어 집에 새끼를 떼어놓고 왔더니만 새끼를 못 잊어 저러는가 봅니다 라고 대답하였고, 그 말을 들은 태조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었는지 심기가 편치 않아 하시다가 박순에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지난 이야기나 서로 나누어가며 하루 더 머물다 가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어 박순은 그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태조와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마침 새끼를 물고 어디론가 이동하려던 쥐가 추녀 끝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도 서로 부둥키며 놓지 않는 것을 보고, 박순이 장기판을 밀어내며 태조 앞에 엎드려 흐느끼며 간절히 울고 있자, 그 모습을 본 태조가 이미 박순의 마음을 헤아리고 드디어 돌아갈 것(回鑾)을 마음먹고 허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순은 은근히 태조의 명을 허락받고, 돌아오고자 사직 인사를 드리니, 행재소에 있던 태조를 모시는 신하들은 미처 태조의 의중을 눈치 채지 못 한 채, 전과 다름없이 박순도 죽이기를 간청하였고, 태조는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어림짐작으로 박순이 용흥강을 건넜을 것으로 여기고 그제서야 신하들의 청에 못 이기듯 허락하고, 사자에게 칼을 건네주며 부탁하시기를, 만약 그가 이미 강을 건넜거든 추격하지는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순은 길을 나서 돌아오는 도중에, 병이 발작하여 지체하는 바람에 제시간에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가까스로 강가에 이르러 배를 타고 건너려고 하는데, 사자가 뒤따라와 박순의 허리를 내리치는 바람에, 드디어 그곳으로 갔던 마지막 차사까지 결국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태조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마음 아파하며 박순은 나의 좋은 친구였는데 결국 죽였구나. 하시며 내가 그와 약속한 말을 이제 어길 수가 없구나 하고 바로 결단하여 도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출전: 연려실기술)

 

그러나 태조는 도성으로 바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 소요산에 이르러 잠시 머물렀다가 양주 풍양에 궁궐을 지어 거처함으로 해서, 조신들이 상왕인 태조에게 국정을 보고하고 자문하였다 하여 양주의 부명(府名)이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의 능은 건원릉으로,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에 있다. 이 능은 다른 능들과 달리 봉분에 잔디를 대신하여 억새풀을 심어 놓았는데, 잔디와는 달라 자주 깎게 되면 말라죽을 우려가 있어, 1년에 단 한 차례 한식날에만 깎아 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조가 승하하실 때 측근들에게 유언하기를,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유년 시절에 놀았던 함흥의 억새밭에 있는 억새풀로 봉분은 덮어주기를 원한다고 한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하며, 당시 그 억새풀을 함흥에서 이곳까지 운반해 오기 위해서는 많은 백성들이 인간 띠를 구성하여 릴레이 방식으로 옮겨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태조는 재위 7년으로, 1398년에 왕위에서 물러나, 태종 8년(1408)에 승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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