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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20/6/17(수)
능성 구씨 문화기행 [9] - LG 창업자 구인회 회장  

 

 

구중서(具仲書, 문학평론가)

      

   능성 구씨 문화기행 [9]

 

문화와 더불어 있는 대기업

LG 창업자 구인회 회장

 

   故 구인회 회장

한국의 대기업으로 정상을 겨루는 엘지 그룹은 1931년 한 지방도시 진주에서 조그만 포목가게 ‘구인회 상점’으로 출발했다. 창업자 구인회(具仁會)는 능성 구씨 도원수파 호양공(致洪)계 후손이다. 그는 1907년 경상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재서공(再書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조부 연호공(然鎬公)은 조선조 말엽 고종대에 문과 급제 후 홍문관에 근무했다. 이 무렵에 연호공은 고종 임금으로부터 선도화 그림과 부채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청일전쟁을 겪은 후 연호공은 난세를 개탄하고 진양으로 낙향했다. 고을 군수가 가마를 타고 예방했고 지역 유학자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그는 유학자의 명예를 지키며 지냈다. 이 집안이 경상도에 정주하게 된 것은 선대에 현풍(달성)의 원을 지내며 자제를 진양의 허씨 집안 규수와 결혼하게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소년 인회는 13세에 조부가 세운 창강정사(滄江精舍)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14세에 허씨 집안 규수와 조혼했다. 1924년 18세에 신학문에 뜻을 두어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향리의 대가족 현실이 시대 현실의 발전에 뒤지고 있는 데에 마음이 쓰여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한다. 향리에서 협동조합을 세워 경제 현실의 안목을 키워갔다.

 

바로 이 경제활동의 초기에 청년 구인회는 문화의식을 겸비하는 성격을 드러냈다. 향리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하고 또 아마추어 신파연극(素人劇) 운동을 전개했다. 이 문화의식은 경제인으로서의 그의 일생에 계속해서 병행되었다.

그는 활동의 중심축으로 정한 기업 경영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의욕을 확장해 나아갔다. 사업의 첫 단계는 향리에서 가까운 진주로 나가 점포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의 사업적 의욕은 언제나 현실에 진입하는 것이다. 당시의 진주는 국내에서 알려진 일종의 풍류문화 도시였다. 사람들의 일상 차림새부터 화사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진주에 포목점 ‘구인회 상점’을 열기로 했다. 부친과 조부의 허락을 받고 도움을 받는 데엔 어려움이 있었다. “양반 선비의 자제가 시장에 나가 장사꾼이 되다니. 이런 남세스러운 일이 있는가.”하는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도 장남 인회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자본금 2천원을 받아서 진주에 상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진주의 상점이 적자를 내기도 하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꾸준히 다방면으로 창의적인 탐색을 하다가 부산으로 무대를 옮겼다. 1947년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워 화장품 크림을 생산했다.

 

락희는 주로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해 나아갔다. 화장품 크림, 비누, 치약, 칫솔, 플라스틱 제품, 선풍기, 냉장고 등 전자제품들은 일상 생활에 연결되는 것이었다. 1953년에 락희는 다시 서울로 진출해 금성사, 엘지 그룹으로 확장 발전한다. 락희 회사 시절의 일화들이 있다. 구인회 사장은 점심시간에 홀로 걸어 나가 수위실의 수위와 함께 단골 설렁탕집에 가곤했다. 또 어느 날엔 구인회 사장이 부하 직원과 함께 회사 복도를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사원 한 명이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데 능성 구씨 서(書) 항렬이다. 평소에 모르던 사이이고 홀로 절차를 거쳐 입사한 사원이다. “아 아저씨, 지낼 만합니까?” 사장이 젊은 사원에게 한 말이다. 구인회 사장은 유교 가풍의 종친의식에 투철했다. 국내의 대기업 중 사주 형제간에 불화가 있고 노사간 갈등이 있는 사례들이 있는데 엘지 그룹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 세평이다. 이것도 근본적인 문화의식의 미덕이다.

 

엘지 그룹은 지금 최첨단 과학기술의 제품들을 생산하지만, 경제적 수익사업 외에 한국 사회 문화부면에 참여해 도움을 준 업적들을 지니고 있다. 『국제신보』 인수 운영, TBC 텔레비전 개국에 참여, 연암도서관의 개설, 실업계 연암전문대학의 창설, 『경남일보』 인수 운영, 연암문화재단의 창립 등이 있다.

 

구인회 회장이 세상을 떠난 마지막 날이 1969년 12월 31일이었는데 바로 며칠 전인 17일에 ‘연암문화재단’을 창립했다. 자신의 호를 붙인 문화재단으로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 뒤로 엘지 그룹이 ‘엘지 아트센터’ ‘화담숲’ 등을 개설해 운영하는 것도 엘지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돈독했던 문화의식을 계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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