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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18/10/8(월)
능성구씨 시조에 대한 고찰  

 

         능성구씨 시조에 대한 고찰

구 자 청(한학자/전통문화연구가)

 

1. 능성구씨의 연원

연원이라는 말은 사물의 근원을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이 생겨나게 된 시초나 그 기원을 뜻하는 용어이다. 성씨의 연원을 고찰하려면 그 성씨의 시조가 되는 분의 출신지, 생몰연대, 주요이력, 묘소의 위치 등을 탐색하는 것이 기본이라 하겠다. 따라서 능성구씨의 연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조인 구존유(具存裕) 공의 출신지와 생몰연대, 주요이력과 묘소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연구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시대의 역사서와 능성구씨의 족보 등을 기본적인 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주요 성씨들의 득성(得姓) 연원을 살펴보면, 대개 네 가지 정도의 경우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시조의 탄생신화 : 밀양박씨(박혁거세), 제주고씨(고을나)

    ② 공신으로 사성(賜姓) : 평산신씨(신숭겸), 청주한씨(한 란)

    ③ 귀화에 따른 득성 : 연안이씨(이 무), 신안주씨(주 잠)

    ④ 토착화한 성씨 : 전래되어온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능성구씨의 경우에는 시조의 탄생신화가 없고, 국가로부터 사성된 기록도 없으며,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도 아님을 감안해 본다면 토착화한 성씨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2. 시조(구존유)의 유래

우리나라 성씨들의 족보는 대부분 조선후기에 편찬되었다. 능성구씨 최초의 족보는 1575년(선조 8)에 발간되었는데, 이는 안동권씨, 문화유씨, 강릉김씨에 이어 우리나라 성씨들 중에서 네 번째로 이른 시기에 편찬된 것이다. 이 족보에 능성구씨 시조인 구존유 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高麗文魁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 墓和順郡春陽面天台山左風吹羅帶形云而失傳

配新安朱氏父宋翰林學士潛嘉定甲申與七學士浮海而東來居錦城被蒙古追索變名積德   

隱居綾城考亭里高祖徽國文公 晦菴先生熹〔고려시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상장군을 지냈다. 묘는 화순군 춘양면 천태산 왼쪽 풍취나대형에 있었다고 하는데 잃어버려서 전해지지 않는다. 부인은 신안주씨이고 아버지는 송나라의 한림학사인 주잠이다. 1224년(고종 11)에 7학사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와서 금성(나주)에 살았다. 몽고의 추색을 당하자 이름을 적덕으로 바꾸고 능성의 고정리에 숨어 살았다. 고조는 휘국문공 회암선생이신 주희(주자)이다.〕

 

위 기록에서 문괴(文魁)는 과거시험인 문과에서 장원급제를 이르는 용어이다. 벽상삼한(壁上三韓)은 공신에게 주는 훈호(勳號)로서 정1품관의 품계인 삼중대광(三重大匡)의 앞에 붙이는 용어이다.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의 ‘검교’는 임시라는 뜻이며, 상장군은 고려시대 무관의 최고 지위로 정3품에 해당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구존유 공은 고려시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상장군에 임명되고, 정1품관에 올라 공신의 훈호까지 받은 인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고려의 관직표에는 정1품관인 삼중대광은 1308년(충렬왕 34)에 처음으로 신설되었다. 다만 이전에는 향직(鄕職)으로서의 삼중대광이란 명칭이 있었을 뿐이다. 또한 벽상삼한 훈호 역시 충렬왕 때 삼중대광을 신설하면서 처음으로 정1품관의 품계인 삼중대광의 앞에 붙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구존유 공이 향직으로서 삼중대광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족보에 기록된 연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고려 전기의 향직은 주로 지역의 호족이나 유력인사들에게 부여하였다. 당시 구존유 공이 능주지역의 대표적 호족이었다면 향직인 삼중대광이 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삼한벽상공신’이 있다.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940년에 신흥사(新興寺)를 중수하고 이곳에 공신당(功臣堂)을 세우면서 공신당의 동편과 서편의 벽에 삼한공신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벽에 그린 삼한공신이라 하여 이들을 삼한벽상공신으로 부르는데 벽상공신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공신당에 그려진 삼한벽상공신은 모두 30여 명으로 고려의 개국공신 가운데서도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이다. 그 중에 구존유 공이 포함되어 있는데, 고려 개국공신 명단에는 구존유 공의 이름이 올라있지 않으며, 또한 능성구씨 족보의 기록과는 약 300여년의 차이가 있다. 현재 능성구씨 족보상에는 구존유 공의 생몰연대가 없으므로, 배위인 신안주씨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서 고려 고종 때인 1220년대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기록은 신안주씨 동국시조인 「청계공실기」를 근거로 하고 있다.

 

 

3. 시조 이전 구씨의 인물

앞에서 언급한 삼한벽상공신의 구존유라는 인물과 능성구씨 족보상에 시조로 기록된 구존유 공이 동일 인물인지를 밝혀내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한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선 현재 시조로 삼고 있는 구존유 공의 선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구존유 공과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으나, 구존 공의 선대로 추정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한다.

 

  ∙ 구  도(具  道) : 후백제 장군(고려사 권92 열전5)

  ∙ 구단서(具端舒) : 구도의 아들

  ∙ 구  진(具  鎭) : 궁예의 막료, 고려 나주도대행대시중(고려사 세가)

  ∙ 구  대(具  代) : 유격장군(고려사 권11 세가11)

  ∙ 구족달(具足達) : 고려 태조 때의 명필(서예가)

 

이 기록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들이 모두 삼국시대 백제 지역인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궁예의 막료였던 구진의 활동상이라 하겠다. 구진은 태봉국의 임금인 궁예가 가장 신임하던 신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전라도 나주지역의 진무를 위하여 구진을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으로 임명하였으나, 구진이 궁예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부임하지 않으려 하였다. 이때 왕건의 부하인 유권열이 말하기를, ‘만약에 구진이 부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구진이 마지못해서 부임하였다는 기록이『고려사』세가편에 나온다. 이때 왕건이 굳이 궁예의 충성스런 막료였던 구진을 나주지역에 보내려고 했다는 사실은 구진이 나주지역 출신으로 신망이 높았던 인물임을 알 수가 있다. 당시는 고려가 건국을 했다고는 하지만 전국의 호족들이 발호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로써 보면, 구존유 공보다 앞선 시대에 구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나주지역(능주는 나주에 속함)에 호족으로 세거했던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존재함으로써 일부에서는 구존유 공이 고종 때 사람이 아니라 후삼국 말기에서 태조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보고 능성구씨의 득성 연대를 300여년 소급해서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구존유 공과 구진(具鎭)이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현재의 기록에서 소급하여 계대할 수 있는 정확한 사료나 근거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4. 결  론

족보를 편찬할 때에는 편찬 시점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으로 계대(系代)하여 피라미드와 같은 모형으로 만들어 지게 된다. 1575년에 간행된 능성구씨 족보도 이와 같은 피라미드 모형의 계단방식으로 계대하여 올라갔다고 보면 마지막 정점의 구존유 공 이상으로는 상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을 시조로 삼은 것이라 하겠다. 능성구씨의 최초 족보인 을해보의 편찬을 주도한 백담 구봉령(具鳳齡) 선생과 팔곡 구사맹(具思孟) 선생은 당대의 석학으로 구존유 공의 선대에 대한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비조인 공자께서 언급하신 술이부작(述而不作:사실을 기록할 뿐 새로 짓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하여 상고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족보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시조를 소급하여 족보를 수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다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한 사료나 계대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 자료가 나올 경우에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하여 족보를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삼중대광, 벽상삼한, 삼한벽상공신, 삼한공신, 고려개국공신, 향직 등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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