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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17/10/11(수)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이야기  

LG 구자경과 구본무의 인화와 혁신

 

 포목점→락희화학→럭키금성→LG로 성장

 한국 최초로 라디오·TV·냉장고 만들며 '혁신'

 

LG는 인화를 중시한다. 가족은 물론 임직원 사이가 좋아야 기업이 잘 된다는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대기업 경영권 승계도 이런 분위기 탓에 잡음 없이 이뤄져 왔다. LG의 제품 역사에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라디오, TV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것도 LG다.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LG 로고가 찍힌 TV를 자주 보게 된다. 호텔 방에 갖춰 놓은 TV가 LG 제품인 경우가 많아서다. LG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LG의 출발은 진주의 포목점이었다. 창업자는 구인회이고 포목점의 이름은 구인회상점이었다.

 

 

창업자 구인회 ‘최고 기업 만들자’

 

  해방 후 부산에서 화장품, 플라스틱 제품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고 라디오,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서 대기업이 됐다. 구인회가 창업해 국내의 최고 기업을 만들었다면 그의 장남인 구자경과 또 다시 그의 장남인 구본무는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키웠다. 구자경은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학교 선생님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친 구인회의 엄명으로 락희화학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공장 직공들과 같이 기름밥을 먹고 뒹굴며 기업 생활을 익혔다. 1969년 창업자 구인회가 6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장남인 구자경이 럭키금성그룹(LG그룹의 옛이름) 회장직을 승계했다. 구자경의 나이 45세였다.

  럭키금성이 국내에서는 1~2위를 다퉜지만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서는 좁은 국내를 벗어나야 했다. 구자경은 수출을 늘리는 동시에 생산기지 자체를 해외에 만들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의 헌츠빌에 TV공장을 세웠고 1987년 독일, 1988년에는 영국과 멕시코, 태국, 필리핀 현지에도 세웠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에도 진출했다. 원칙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한국 기업의 인도 공장, 러시아 공장이 아니라 인도화, 러시아화된 현지의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도법인에서 일하는 2900명의 인원 중 한국인은 20명에 불과할 정도다.

 

 

 

전문경영인에 맡기다.

 

구자경의 또 다른 전략은 자율경영이었다. 회사의 경영은 전문경영인과 임직원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줬다. 오너는 큰 방향을 정한 후 전문경영인들이 그 방향대로 잘 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정도의 역할만 맡았다. 구자경 재임 시 럭키금성그룹은 내수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이 됐고 매출액은 520억원(1970년)에서 30조원(1994년)으로 600배 가까이 늘었다. 구자경은 70세가 되던 1995년 회장직을 장남인 구본무에게 넘기고 물러났다. 그 뒤로 그는 20년이 넘게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본인이 진정 바라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새롭게 사령탑을 잡은 구본무는 기업의 이미지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럭키금성이던 기업의 이름을 LG로 바꿨다.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도 쉽게 알아보고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로고의 모양은 빨간색에 사람 얼굴 형상으로 만들어서 친근감을 주게 했다. 그 바탕 위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펼쳐나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LG의 로고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그 증거다. LG는 여러 가지의 한국 최초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플라스틱제품, 최초의 라디오, 최초의 흑백TV, 최초의 컬러TV, 최초의 냉장고 등 최초의 제품은 물론이지만 최초의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순환출자를 통해서 다각화를 해야만 했다. 외국과는 달리 지주회사라는 제도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금지가 풀리자 LG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지주회사를 설립해서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이룩했다. 그와 동시에 LG, GS, LS, LIG 등으로 기업분할도 이뤄냈다.

 

 

‘인화’로 이룬 조용한 경영권 이양

 

  LG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이자 강점은 ‘인화’다. 오너들의 주인의식은 한국 기업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강력한 원동력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경영권이 상속되는 과정에서 형제들, 자손들 사이에 싸움이 잦게 일어나는 문제다. 집안싸움을 넘어 기업의 경영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LG그룹은 3대째 오너 경영이 이어져 오는데도 그같은 싸움이 없다. 형제와 자손이 많은 가문임을 감안한다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LG, GS, LS 등으로의 분가를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인화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 덕분일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그 인화가 또 다시 어떤 역할을 해낼지 기대된다.

 

편집자 주 : 상기 기사는 한국경제신문 생글생글 563호(2017년 7월 17일)에 실린[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에 대한 기사로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쓴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중 24번째 기사로 교수님과 한국경제신문사로부터 종보 게재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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